언론에 비친 희만사

[빚쟁이 서민들, 희망은 어디에] ‘빚 고민’ 혼자 끙끙… 대부업체에 손 내미는 순간 ‘빚 수렁’

2015.12.27

64.3%. 우리나라 가구 중 현재 부채가 있는 가구의 비율이다. 이들은 어떻게 빚을 지게 됐을까. 불의의 사고, 학자금 대출, 부모의 실직 등 빚의 수렁에 빠지기까지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몇 가지 공통점도 있다.

①가족에게 말하지 못해 혼자 끙끙 앓고 ②그러다보니 연체를 막으려 대부업체 등에 손을 내밀게 돼 빚이 빚을 부르며 ③해결 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열심히 일하면 빚을 갚게 되리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다.

‘빚 컨설팅’ 사회적기업 ‘희망 만드는 사람들'(희만사)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이 막다른길에 몰려 도움을 청하러 온다. 김희철 희만사 대표는 “늘어나는 빚을 방치하는 순간 그 늪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고 빚이 생기는 고리를 바로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 빚 갚다가, 몰래 친정 돕다가…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 덕에 주부 김경희(가명·38)씨는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 외환위기는 그의 모든 걸 한순간에 바꿔버렸다. 뭐라도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위기감에서 25세에 뒤늦게 지방대학 세무회계학과에 입학했다.

가세는 계속 기울었고,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댔다. 이즈음 김씨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명의를 빌려줬다. 어머니 이름으로 된 채무가 16억원에 달했다. 보다 못한 김씨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어머니에게 돈을 건넸다. 2008년 아버지 사업이 부도난 뒤에는 부모의 생활비와 부채를 책임져 왔다.

3년 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김씨의 사정은 팍팍해졌다. 직장을 그만뒀지만 빚을 내 부모에게 송금했다. 고민 끝에 남편에게 털어놨는데 남편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현재 김씨 채무는 2110만원이다.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이 섞여 있다. 한 달 넘게 연체 중이며, 김씨 부부는 서로 말도 안 하는 ‘냉전’ 상태가 됐다.

김미정(가명·32·여)씨는 세 아이의 엄마다. 맞벌이를 하는데 그는 월 130만원, 남편은 320만원을 번다. 미정씨가 몇 년 전부터 형편이 어려운 친정에 남편 몰래 돈을 보내면서 ‘굴레’가 시작됐다. 원래 몇 달만 생활비를 대고 그만둘 생각이었지만 친정 부모의 처지를 외면하지 못했다. 월급만으로는 비는 돈을 채울 수 없어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았다.

빚은 빚을 불렀다. 미정씨 앞으로만 6706만원의 부채가 쌓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서민금융인 햇살론으로 1968만원, 바꿔드림론으로 948만원을 대출해 상환했다. 지인에게 700여만원을 꾸기도 했다. 그래도 빚이 줄지 않아 다시 대부업체에 손을 벌렸다.

미정씨는 월급에 다른 빚을 더해 월 189만원씩 빚을 갚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어 가슴앓이만 하다 희만사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 교육비, 학자금 대출에 ‘발목’

정상훈(가명·50)씨는 중소기업에 다닌다. 월 370만원을 벌고, 9000만원 전셋집에 산다. 월급은 거의 오르지 않았는데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원비 부담이 커졌다. ‘무능한 아빠’가 되기 싫어 티를 내지 않고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았다. 대부업체에도 찾아갔다.

그 빚을 정리해보려고 개인회생 절차도 한 번 밟았다. 정부가 제공하는 햇살론과 바꿔드림론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빚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다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고, 현재 김씨의 빚은 1억100만원이 넘는다. 정씨는 아내에게도 빚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나날이 늘어나는 빚이 “무섭다”고 했다.

이상훈(가명·27)씨는 다니던 대학에서 행정조교로 일하고 있다. 한 달 꽉 채워 일하면 134만원을 손에 쥔다. 학교 근처 단칸방에서 보증금 200만원에 월 28만원을 내고 산다. 한 달 생활비는 111만원이고 보험료로 8000원, 저축으로 20만원을 지출한다. 이씨의 꿈은 7급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녹초가 돼 퇴근해서도 시험공부를 한다.

대학을 다니며 얻은 ‘학자금 대출’만 아니면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학자금 대출은 2064만원이 남아 있다. 벌이가 빠듯해 매월 1만원씩 상환한다. 이대로는 원금만 갚는 데 172년(2064개월)이 걸린다. 이씨는 “남은 학자금 대출이 꿈에 나온다. 나날이 치솟는 공무원시험 경쟁률도 골칫거리다. 헛된 희망에 계속 시험 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2000만원 넘는 빚만 남는 건 아닌지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암투병·사기… ‘빚의 유산’

프로그래머 김남길(가명·34)씨는 일본에서 장사를 하는 어머니 대신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암투병 중이던 할머니 병구완을 위해 김씨의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뒀다. 퇴직금 대부분을 병원비로 썼다. 남은 돈으로 주식 투자를 했지만 모두 날렸다. 어머니도 번 돈의 대부분을 사기당했다.

김씨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다녔다. 편의점 알바 등으로 생활비를 직접 벌다가 군대를 갔고, 그 사이 아버지는 집을 팔았다. 2004년 제대한 뒤에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졸업 후 바로 취직했는데 아버지는 할머니 병원비가 급하다며 돈을 요구했다.

지인에게 1300만원을 빌렸고, 마이너스통장으로 갚았다. 이게 시작이었다. 사업을 하자는 친구 말에 대출을 받아 투자를 했다. 그는 5개월 뒤 연락을 끊었다. 할머니 병원비와 학자금, 부모의 빚 등으로 김씨가 안고 있는 부채는 9685만원에 이른다. 매달 상환이 돌아오는 돈만 882만원으로 월급 290만원으로는 턱도 없다. 김씨는 “열심히 산다고 아등바등하지만 빚만 점점 커질 뿐”이라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