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희만사

[빚쟁이 서민들, 희망은 어디에] ‘빚 다이어트’… 다시 일어설 기회는 있다

2015.12.27

빚은 오로지 개인의 잘못일까, 사회도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일까. 정부는 기준금리를 꾸준히 내리며 저금리 기조를 이어왔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는 등 쉽게, 많이 돈을 빌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수출이 침체된 상황에서 경기를 끌어올리려면 내수를 살려야 했다. 정부는 내수에 온기를 불어넣는 방법으로 ‘돈 풀기’를 선택했다. 사실상 빚을 권장하거나 방관한 셈이다. 서민들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빚’에 젖어들었다.

가계부채가 1200조원에 육박하고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져 채무자의 여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어느 때보다 현명하고 단호한 ‘빚 다이어트’가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패자부활’ 기회를 잘 활용하라는 조언이다. 정부의 서민금융지원제도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무작정 열심히 일만 해선 빚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14년간 딱 4일 쉬었지만…

송민철(가명·48)씨는 대기업에 자동차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을 경영했다. 14년 전 그때만 아니었으면 지금도 ‘사장님’일지 모른다. 그가 여름휴가를 간 사이에 회사 직원이 공장 설비를 중국으로 빼돌리고 잠적했다. 공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수중에 남은 돈은 100만원만 빼고 직원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차까지 팔았는데도 퇴직금 줄 돈이 모자라 직원들에게 빌기도 했다. 꼭 재기해 갚겠다고 약속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갔다. 졸지에 사장님에서 친구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됐다.

사람이 싫고 원망스러웠다.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더군요. 그래서 빚이라는 놈에게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자동차부품 회사의 비정규 생산직에 취업했는데 바로 급여 압류가 들어왔다. 그래서 장기 연체한 채무를 해결하려고 일단 신용회복위원회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와도 빚만 생각하면 잠이 안 왔다. 모든 잔업과 특근을 도맡았고, 주말에도 일터에 나갔다. 주위에선 ‘지독하다’고 했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정직원이 됐고 2년 만에 개인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그러나 ‘빚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신용회복위원회와 협약을 맺지 않은 대부업체나 개인에게 빌린 돈, 이전 회사 직원들에게 줄 퇴직금이 남아 있었다. 드디어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6800만원 빚을 갚기에 그 한도는 너무 낮았다. 독촉이 쇄도했고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를 찾았다.

워크아웃 당시 연체 상태로 멈춰놨던 대출 상환이 다시 시작됐다. ‘빚의 굴레’가 작동한 것이다. 송씨는 회사 부도 후에 14년간 딱 4일 쉬었다. 그는 “몸도 마음도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라며 “다 내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송씨가 빚에서 벗어날 방법은 뭘까. 그는 일반 채무자와 달리 이혼한 아내에게 양육비를 보내야 한다는 변수가 있다. 바꿔드림론이나 햇살론을 받는다 해도 문제가 생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원리금을 함께 갚아야 한다. 330만원 월급에서 200만원을 원리금으로 내더라도 남은 돈에서 자녀 양육비를 빼면 최저생계비도 되지 않는다.

우선 대부업체 등의 고금리 채무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희망 만드는 사람들’(희만사) 등 민간업체에서 자금을 빌려 이 빚부터 처리했다. 그 뒤 신용등급을 관리해 은행 저금리 대출로 전환했다. 아직 빚이 완벽하게 해결되진 않았다. 다만 큰불을 껐으니 지금처럼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다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청각장애인의 억울한 빚

김진아(가명·31·여)씨도 ‘억울한 채무자’에 속한다. 청각장애인이라 입 모양과 수화로만 대화가 가능하다. 6년 전 결혼한 김씨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왔다. 월세 보증금이 필요했다. 대출을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조차 몰라 대출중개업자를 찾아갔다. 1000만원만 필요했는데 중개업자는 3350만원을 빌리게 하고, 수수료 명목으로 1950만원을 떼어갔다.

그러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났다. 취업하고 싶어도 청각장애인을 받아주려는 기업이 없었다. 들리지 않아 전화를 받지 못하는 그에게 빚 독촉을 하려고 대부업체는 그가 얹혀 지내는 친구 집으로 매일 같이 찾아왔다. 돈을 벌어야 빚을 갚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김씨는 부채 관리 컨설팅을 해주는 한 단체에 찾아가 사정을 말했고, 더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에 뛰어들었다. 장애인 고용률이 높은 회사를 찾아다닌 끝에 월 13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소득활동을 시작하니 채무조정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는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월 30만원씩 5년간 상환하는 방식으로 채무조정을 받았다. 친구 집 대신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정기적금에도 새로 가입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빚, 이렇게 갚자

희만사는 빚을 갚기 위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먼저 부채의 원인부터 파악해야 한다. 현재 정확한 부채 규모와 자신의 해결의지 등을 꼼꼼히 기록해보는 것이다. 배우자, 부모, 자녀와 함께 원인이 무엇인지 토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빚을 해결하기 위해 각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진다.

그 다음에는 현금흐름을 점검한다. 생활비 교육비 등에 아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현재 월급으로 어느 정도 상환할 수 있는지, 수입과 지출이 역전돼 있지는 않은지 등을 계산한다. 1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따져야 한다.

상환 가능성을 측정할 때는 이자가 아니라 원금 상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3년 안에 갚을 수 없다면 이미 절반은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니 다른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서민금융제도가 어떤 조건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맹신하면 안 된다. 수많은 인터넷 카페 등에서 ‘친절 상담’을 내세우지만 대부분 새로운 대출로 돈을 벌려는 이들이다.

부족한 돈을 대출로 해결하는 습관도 버려야 한다. 저금리 전환대출도 결국 빚이다. 안심해선 안 된다. 편하고 빠른 대출은 없고, 고통 없는 부채 탈출도 없다. 김희철 희만사 대표는 “숨이 막힐 정도로 성실해야 빚을 갚을 수 있다. 눈앞에 있는 빚과 어떻게 싸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